
이토록 아름답고 드라마같은 경기가 있을까요.
코트에 선 선수들은 체력의 한계, 부상으로 인한 고통까지 잊었습니다. 무아의 경지에 오른 선수들은 오직 공만 보고 승리만을 쫓았습니다. 누군가 “배구가 재미있나”라고 묻는다면 “2025 챔피언결정전 3차전을 다시 보시라”고 말하겠습니다.
2024-2025 V리그 여자부문 챔피언결정전 3차전이 4월 4일(금) 저녁 7시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렸습니다. 김연경 선수가 그토록 열망한 우승 트로피를 품기까지 이제 단 1승만이 남은 상태였습니다. 선수로서 ‘마지막날’이라 확신한 김연경 선수 가족 모두가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배구여제를 떠나 보내야만 하는 자리, 그녀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길 바라는 팬들도 체육관을 채웠습니다. 어느 새 충무체육관 3500여 모든 좌석이 모두 들어찼습니다.

흥국생명은 게임 시작과 동시에 리드를 잡았습니다. 계속해서 2~3점차 리드를 유지하면서 여유로운 게임 운영을 해 나갔습니다. 더이상 물러설 뒤가 없는 정관장은 안간힘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부상과 체력 저하로 인해 어찌할 수 없는 간극이 느껴지는 듯 했습니다.
패색이 조금씩 드리워지던 그 때, 정관장 선수들의 위닝 멘털리티를 끄집어내는 장면이 연출됩니다.
상황은 18-23으로 스코어가 크게 몰린 때 였습니다. 정관장 세터 염혜선이 무릎을 붙잡고 쓰러집니다. 통증을 호소하면서 크게 괴로워했습니다. 플레이오프때 부터 시작된 지독한 무릎 통증이었습니다. 보도에 의하면 염혜선은 진통제를 복용하지 않고선 빠르게 걸을 때 조차도 통증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팀 의료진이 부리나케 코트 위로 뛰어들었습니다. 염혜선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홈팬들과 동료들은 두손을 모아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잠시 벤치로 물러난 염혜선이 다시 코트로 복귀했습니다. 엄청난 환호성이 체육관을 채웠습니다. 게임의 흐름을 바꾼 첫번째 변곡점이었습니다. 염혜선은 팀의 주장입니다. 주장이 흘리는 눈물에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의 힘’이 동료들에게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흥국생명은 1세트를 승리했습니다. 흥국생명의 1세트 승리.

2세트는 우리 배구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였습니다. 세트 초반 흥국생명은 9-4로 리드를 잡았습니다. 정관장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메가왓티의 공격 점유율과 성공율이 조금씩 높아지면서 점수차를 줄여나갔습니다. 염혜선의 서브에이스까지 힘을 보탰습니다.
이제 묘한 기운이 코트를 채웁니다. 순식간에 5점 리드를 잃고 게임은 동점이 됐습니다. 흥분한 아본단자 감독이 작전타임을 부르고 선수들을 강하게 다그칩니다.

2세트는 ‘사이드아웃’ 배구의 진수를 보여줬습니다. 두 팀 모두 연속 득점을 하지 못했고 연속 실점을 허용하지도 않았습니다. 게임은 어느새 24-24 듀스로 치달았습니다. 듀스 스코어 이후부터 김연경과 메가왓티의 쇼타임이 시작됐습니다. 팀을 대표하는 두 공격수가 스코어를 쌓아나갔습니다. 메가왓티는 본인의 커리어 중 한 세트 최다 득점을 올렸습니다. 공격성공률도 60%를 넘겼습니다.
2017년 3월 26일 흥국생명과 기업은행의 챔피언결정전에서 34-32 스코어가 나왔던 때까 있었습니다. V리그 여자부분 듀스 스코어로 최다 득점 세트였습니다. 흥국생명과 정관장은 기록을 깼습니다. 2세트 최종 스코어는 36-34. 흥국생명이 2세트 마저 가져가면서 트로피를 품기까지 이제 단 1세트만을 남기게 됐습니다. 하지만 ‘배구의신’이 3차전에서 미소를 보인 쪽은 흥국생명이 아니었습니다. 흥국생명 2세트 승리.

3세트 초반 흥국생명 선수들이 들뜬 듯 느껴집니다. 정관장이 세트 리드를 잡고 게임을 운영하기 시작합니다. 흥국생명 선수들은 몸이 무거워지고 둔탁해졌습니다. 그 길었던 2세트 듀스 접전을 벌인 탓이었을까요. 양팀 모두 체력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세트 중반 부터 두 팀은 배구의 완전히 몰입한 무아의 경지에 들어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16-17로 흥국생명이 리드를 잡자 고희진 정관장 감독이 작전타임을 불렀습니다. “우리 너무 잘하고 있다. 투혼을 발휘하고 있다. 끝까지 한번 해보자”는 단순하지만 울림을 주는 메시지였습니다. 고 감독 말대로 정관장은 투혼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3세트 후반 승부처에서 빛난 별은 부키리치였습니다. 21-19, 2점의 리드를 확보하는 가장 의미있는 포인트를 만들었습니다. 흥국생명은 김연경과 피치의 잇따른 백파이프 공격에서 발생한 범실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정관장의 3세트 승리.

4세트. 정관장 공격이 다채로워졌습니다. 살아난 부키리치와 메가왓티 공격에 더해 박은진, 정호영의 속공까지 더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순간마다 행운의 득점까지 쌓였습니다. 흥국생명은 범실이 많아지고 선수들 표정이 일그러져 갔습니다. 두 번째 테크니컬 타임 이후 흥국생명 전열이 흐트러졌습니다. 연이은 범실과 공격 실패로 15-21까지 스코어가 벌어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정관장의 기세를 막아 세울 수 없는 수준이 됐습니다. 2023년 챔피언결정전 때도 이랬습니다. 역스윕으로 한국도로공사에게 우승을 내어 준 악몽이 재현되듯 흥국생명 선수들 표정은 하얗게 질려버렸습니다. 정관장의 4세트 승리.

5세트는 시리즈 반격을 알리는 ‘서곡’이었습니다. 3, 4세트 승리를 통해 멘털리티를 완전히 회복한 정관장은 5세트에서 전혀 다른 팀이 되어 있었습니다. 체력 변수는 흥국생명 발목을 붙잡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코트에 발이 묶인 흥국생명 선수들이 코트를 우왕좌왕 헤매는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최종세트를 3연속 득점으로 시작한 정관장의 승리를 막을 수 없었죠.

이제 시리즈는 1-2가 됐습니다. 정관장의 반격이 시작됐습니다. 상대가 흥국생명이기 때문에 2패 뒤 1승은 큰 의미를 갖습니다. 팀 역사상, 아니 배구 역사상 한번도 없었던 역스윕 우승을 내준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는 체력 변수도 양 팀 모두 같은 상태나 다름 없어졌습니다. 부키리치, 염혜선, 노란의 부상 투혼은 더 이상 약점이 아닌 선수들의 혼을 불러일으키는 기폭제가 됐습니다.
4차전 격전지도 대전충무체육관입니다. 김연경의 마지막 ‘쇼타임'은 대전에서 우승과 함께 행복한 결말을 맞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 결과를 장담할 순 없게 됐습니다.

배구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흥분과 감동, 재미를 준 3차전을 뒤로 한 채 4차전을 향합니다. 두 팀이 쓰고 있는 이 ‘배구 드라마’는 어쩌면 아직 절정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4차전을 놓쳐선 안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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