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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볼티모어의 작은 거인 ‘세드릭 멀린스(Cedric Mullins)’

contentory-1 2025. 4. 22. 18:28

 

그는 왜소한 야구 선수입니다. 173cm의 키에 몸무게는 80kg에도 못 미칩니다. 하지만 작은 체구에도 빅리그에서 한 시즌 30홈런을 때려낼 만큼 강한 펀치력이 있습니다. 올스타에도 뽑혔습니다(2021년). 덩치는 작지만 조용하고 묵직한 리더십을 보여주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중견수 ‘세드릭 멀린스(Cedric Mullins)’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너는 덩치가 큰 운동선수는 아니지. 하지만 너의 체구에 어울리는 최고의 야구를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단다."

 

그의 야구 인생을 이끌어 온 힘찬 메시지는 멀린스의 아버지가 한 말입니다. 야구선수로서 그의 가치관을 형성한 결정적인 한마디였습니다.

국내 야구팬들 사이에서 그 이름은 아주 낯설지는 않습니다. 2017년 대한민국의 ‘타격기계’ 김현수 선수가 오리올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시즌 2년차를 맞았습니다. 김현수는 3월 17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게임에서 9경기 연속 출루를 이어갔습니다. 이 경기 7회초, 김현수 타석에 대타로 들어선 선수가 세드릭 멀린스였습니다. 시범경기에서 가끔 얼굴을 비췄던 멀린스는 2018시즌부터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2018 시즌, 오리올스는 우울한 시즌을 보냈습니다. 한 시즌 47승 115패를 기록했습니다. 구단 역사상 최다 패 기록이 새로 쓰여졌습니다. 그래도 팬들에게 한 줄기 단비 같은 기억도 있었습니다. 세드릭 멀린스가 데뷔한 것입니다. 발빠른 돌격대장 이미지의 멀린스는 루상에 나서면 그라운드를 휘저었습니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벅 쇼월터(Buck Showalter) 감독이 엄지손가락을 세울 만큼 외야 수비 능력도 돋보였습니다. 멀린스는 빅리그 데뷔전에서 3안타를 쳐내면서 홈팬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오리올스 팬들에게 실망감이 가득한 2018년, 멀린스는 팬들에게 인상깊은 신고식을 선물했습니다.

 

멀린스는 빠르게 스타가 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2020년 11월 위기가 닥쳤습니다. ‘크론병(crohn’s disease)’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크론병은 몸 전체 어디서라도 발생하는 만성 염증 질환입니다. 설사와 복통, 체중 감소를 불러일으킵니다. 항상 의욕이 떨어지면서 식욕 부진을 동반하는 병입니다. 수시로 관절염 증상을 느껴 통증을 달고 지내는 후유증도 심합니다. 우리나라에선 이 병을 겪는 환자는 군대 면제를 받습니다. 그만큼 예사로운 병이 아닙니다. 멀린스는 병을 극복하기 위해서 15cm 가량 장 절제술을 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체중이 10kg 가까이 감소했습니다. 운동선수인 그에겐 치명적인 위기였습니다. 멀린스는 스위치 히터였습니다. 하지만 이 병을 겪고 난 뒤 오른손으로 타격하는 것은 그만뒀습니다. 신체 부담을 덜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멀린스는 2021 시즌을 앞둔 스프링 캠프 때 하체 강화 훈련에 집중했습니다. 중견수로서 더 많은 게임에서 꾸준함을 유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병을 극복하고 필드에 선 멀린스는 팀의 리더가 되어 갔습니다. 동료들의 팔로우십이 한데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리올스의 스타 플레이어 거너 헨더슨 “병을 이겨내고 필드해 복귀하기까지 멀린스는 운동선수에게 정신력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보여줬다”고 말했습니다. 헨더슨을 포함한 많은 젊은 선수들은 멀린스를 ‘롤(Role)모델’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오프시즌 수술과 회복에 전념하며 병을 이겨낸 멀린스는 2021년을 커리어 하이 시즌으로 만들었습니다. 159게임에 출전한 멀린스는 타율 .291 30홈런 175안타 59타점을 올렸습니다. 시즌이 끝난 뒤 멀린스의 크론병 투병 사실이 공개됐습니다. 언론에선 그의 투병과 회복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소개했습니다. 오리올스 팬들이 그에게 보내는 사랑과 응원도 더 뜨거워졌습니다. 멀린스는 그렇게 조금씩 오리올스의 심장이 되어갔습니다. 이후 2022년 골든글러브 최종 후보자 명단에 올랐고, 2023년에는 WBC 미국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멀린스는 리그의 준수한 외야수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멀린스는 고함을 치고 포효하는 방식의 리더가 아닙니다. 과묵하고 절제할 줄 압니다. 하지만 필드위에서나 라커룸에서 동료들은 그를 중심으로 모입니다. 그의 주변엔 동료들이 항상 함께 있습니다. 멀린스는 항상 맨 앞에서 팀이 하는 모든 훈련의 분위기를 진지하게 이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거너 헨더슨 “그가 잡아내는 공들을 볼 때면 턱이 땅에 붙을 정도로 입이 떡 벌어진다”고 했습니다. 오리올스의 1루 코치 앤서니 샌더스 “멀린스가 아직까지 골든글러브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나? 이미 최소 2개 이상은 받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팀 동료 라이언 오헌“우리 모두 멀린스의 중요성을 공감한다. 팬들은 더 잘 느낀다. 그것은, 야구선수로서 보여주는 직업 의식,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근면성실함, 그리고 과묵함 속에 묻어있는 진지함”이라고 했습니다. 멀린스는 동료 뿐 아니라 코치진, 나아가 팬들 사이에서도 폭넓은 신뢰와 지지를 받는 선수 입니다.

"나는 실책 없는 깔끔한 게임을 위해 집중합니다. 평범한 플레이가 가장 중요합니다. 게임 중에 반복되는 플레이에서 실수를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멀린스가 추구하는 야구 철학입니다. 동시에 그의 성품을 느낄 수 있습니다. 화려한 플레이를 고집하지 않습니다. 복잡한 수비 통계 지표에서 상위권에 들기 위해 무리수를 두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플레이를 가장 완벽하게 해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의 야구 철학에 동료들도 공감하면서 팀의 문화로 자리잡았습니다.

멀린스에게 이번 시즌은 특별합니다. 어쩌면 오리올스 유니폼을 입고 뛰는 마지막 시즌이 될 지도 모릅니다. 멀린스는 2025 시즌이 끝나면 FA시장에 나갑니다. 아마도 오프시즌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외야수로 꼽힐것입니다. 그는 잘 치고, 잘 달리며, 수비능력까지 갖춘 훌륭한 중견수입니다. 올해 나이가 30세에 불과합니다. 선수로서 전성기 구간에 있습니다.

 

멀린스 본인도, 팬들도 바람은 같습니다. 오래도록 오리올스 유니폼을 입고 캠든 야즈(오리올스 홈 구장)에 서는 것입니다. 팀 단장 마이크 엘리아스는 연장 계약과 관련한 공식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멀린스는 어쩌면 오리올스 소속으로 이번 시즌을 완주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트레이드 마감시한에 맞춰 다른 팀 유니폼으로 갈아입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리올스에는 2021년 드래프트 1라운드 5번으로 뽑은 콜튼 카우저가 멀린스의 포지션을 대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오리올스처럼 큰 시장을 바탕에 두지 않은 팀에겐 숙명입니다. 멀린스와 같이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선수를 오래 데리고 있을만한 형편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트레이드를 통해 좋은 드래프트 픽이나 유망주 선수를 받아야 합니다. 이런 방법으로 미래를 개선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구단의 발전 방식입니다.

멀린스는 지금 상태를 두고 “살짝 씁쓸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빅리그는 비즈니스 그 자체다.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만 선수와 팬의 관점도 반영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오리올스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목표는 뚜렷합니다. 포스트시즌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멀린스는 “우리 팀은 정말, 정말 잠재력이 넘친다. 난 그것을 뒷받침 하는 일부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멀린스가 오리올스 유니폼을 입은 첫 해, 팀은 115패를 기록했습니다. 이듬해에는 108패를 당하면서 끔찍한 시즌은 이어졌습니다. 젊은 선수들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팀은 반등을 거듭했습니다. 2023년과 2024년에는 연이어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습니다. 빠르고 완벽하게 리빌딩에 성공했다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두 번의 포스트 시즌 성적은 0승 5패. 멀린스는 올해만큼은 꼭 포스트시즌에서 승리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멀린스는 볼티모어 팬들과 진한 교감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는 “나는 이렇게 매력적인 도시에서 팬들과 함께 야구하고 있다. 내가 어떻게 야구를 하는지, 우리 팬들은 오리올스 베이스볼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응원하는지 느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저의 모든 것은 팬들로부터 받은 것”이라며 “힘든 시기에도 우리는 열심히, 진심으로 야구했다. 지금의 성과를 포함해 그 어떤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지난 4월 1일, 캠든야즈에서 오리올스는 홈 개막전을 열었습니다. 선수 소개가 이어지는 때 멀린스는 유독 오랫동안 팬들 박수를 받았습니다. 팬들도 알고 있을겁니다. 어쩌면 오렌지 유니폼을 입은 멀린스의 마지막 홈 개막전이 될 지도 모릅니다. 개막전이 끝나고, 멀린스는 인터뷰에서 “저는 볼티모어 팬들의 뜨거운 사랑과 응원을 항상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진짜로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멀린스와 오리올스, 팬들이 함께 펼치는 그들의 야구를 응원하겠습니다. Let’s Go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