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재료의 선택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넷플릭스 콘텐츠 ‘흑백요리사’에서 안성재 셰프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스포츠도 마찬가지. 여기서 말하는 ‘재료’는 ‘플레이어(선수)’가 되겠죠.
요리사들이 꼽는 재료의 최고 요건 중 하나가 ‘제철’여부입니다. 운동선수에게 ‘제철’은 ‘전성기’를 의미하죠. 최전성기 구간에 들어선 선수를 시장의 평가보다 더 높은 가격에 영입하는 것은 ‘이번 시즌에 승부수를 던졌다’는 구단 의욕이 반영됐기 때문입니다.
비싼 돈을 주고 제철 재료를 준비해 요리하려고 주방에 섰는데 황당하게도 식자재가 컬러티가 기대 이하라면 어떨까요. 손해가 생기고 손실을 회복하기 위해 음식 퀄리티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야구도 마찬가지죠. 시장 평가보다 훨씬 비싼 값에 영입한 선수가 게임에 나서기도 전에 부상 당한다면 시즌 구상이 꼬이기 시작하고 밸런스도 무너질 겁니다. 오늘은 시즌을 맞이하기도 전에 황당한 부상으로 팬들의 걱정을 산 불펜투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 2023시즌 강력한 우승후보 뉴욕 메츠의 꼬인 시즌 결말

2023년 1월 첫 주, MLB.com은 새해를 맞아 시즌 전망을 내놓으면서 파워랭킹을 발표했습니다. 이 순위에서 메츠는 2위에 올랐습니다. 저스틴 벌랜더와 맥스 슈어져 영입에 더해 카를로스 코레아를 데려오기 직전이었죠. 또 ‘에드윈 디아즈’를 5년 계약으로 붙잡으면서 확실한 마무리 투수의 존재가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2022 시즌이 끝난 뒤 메츠는 디아즈에게 역대급 계약을 안겨줬습니다. 계약기간 5년 총액 1억 500만 달러, 디아즈는 불펜투수로선 최초로 1억달러 계약의 문을 열었죠. 오버페이란 반응도 있었지만 디아즈는 충분한 가치 평가를 받을만한 선수였습니다. 97마일을 상회하는 투심이 그의 핵심구종이죠. 지저분한(?) 공 끝도 매력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슈퍼계약을 선물 받은 디아즈는 그 해 메츠를 위해 단 하나의 공도 던지지 못했습니다. 2023년 2월 열린 WBC에서 당한 부상 때문이었습니다. 디아즈는 도미니카공화국과의 1라운드 마지막 게임에서 마무리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게임을 승리로 확정지은 뒤 세리머니를 하다가 황당한 부상을 당했습니다. 동료들과 얼싸안는 과정에서 디아즈가 쓰러졌고 부축을 받고서야 걸어 나올 수 있었죠. 검진 결과 오른쪽 무릎 슬개건이 완전히 파열됐고,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습니다.
우승 도전에 나선 메츠의 시즌 출발도 꼬였죠. 마무리 투수가 부재한 상황에서 불펜 투수를 이리저리 돌려 세우는 통에 불펜에선 균형이 무너졌고 역전패가 쌓였습니다. 메츠 팬들에게 꿈처럼 나타난 1, 2 선발 저스틴 벌랜더와 맥스 슈어저도 제 몫을 못해줬죠. 어쨌든 메츠는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빠르게 시즌을 포기하며 백기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 붕괴된 LG트윈스의 불펜, ‘구세주’ 장현식의 영입

긴 염원 끝에 2023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LG트윈스는 2024시즌에도 강력한 우승후보 중 한 팀으로 평가받았죠.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며 챔피언 자리를 기아 타이거즈에게 내어줘야만 했습니다. 치명적인 단점으로 지적 받은 불펜붕괴가 시즌 끝자락, 플레이오프에서도 트윈스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클로저 고우석의 메이저리그 진출, 함덕주의 시즌 아웃, 거기에 정우영의 연이은 부진까지 겹친 트윈스 불펜을 지켜준 건 새로 마무리 투수로 떠오른 유영찬과 베테랑 김진성 정도에 불과했죠. 과부하에 걸린 불펜을 구하기 위해 외국인 투수 엘리에이저 에르난데스는 플레이오프에서 매 경기 멀티 이닝을 소화해내야만 했습니다.
차명석 LG트윈스 단장이 결단을 내렸습니다. 불펜을 보강하기 위해 기아 타이거즈에서 FA신분으로 시장에 나온 장현식 선수(2024 성적: 5승 4패 16홀드, 방어율 3.94)를 4년 총액 52억원(전액보장)에 붙잡았습니다. 트윈스의 새 클로저로 자리 잡은 유영찬이 불의의 부상으로 정상적인 시즌 출발을 신고할 수 없는 상황이 겹치면서 장현식의 합류는 트윈스 입장에선 천군만마와 다름없었습니다. 균열이 심한 트윈스의 불펜 보수공사는 일단락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 경기장 밖에서의 황당한 부상, 메츠의 데자뷰?

위에서 표현했듯, 선수는 완벽한 요리를 위한 최고의 재료 역할을 해야 합니다. 써보지도 못하고 폐기된다면 팀에겐 되돌릴 수 없는 손해가 되고 팬들에겐 실망과 좌절감만 안길 뿐이죠. 최선을 다하는 게임 중에 당한 부상은 그렇다쳐도 경기장 밖에서 승부와 관계없는 부상을 당했을 때 느껴지는 박탈감은 더 클 수밖에요.
16일 저녁 장현식이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현장에서 훈련이 끝난 뒤 걷던 중 미끄러운 길에서 오른발을 헛디디며 부상을 당했단 소식이 전해졌습니다(애리조나 피닉스는 미국에서도 가장 더운 지역으로 꼽힙니다. 빙판이 있을리는 없는데요). 구단 발표에 따르면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지만 장현식은 급하게 미국을 떠나 귀국해 정밀검사를 받았습니다. 결과는 인대 부분 파열. 복귀까지 4주쯤 걸린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왔습니다. 시즌을 통째로 날릴 만큼 큰 부상이 아니란 점이 다행입니다.
하지만 장현식 선수는 야구선수들이 1년 농사를 짓기 위해 씨뿌리는 시기로 비유되는 스프링캠프에서 몸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게 됐습니다. 최고의 컨디션으로 공을 던지기 위해선 4주이상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트윈스는 50억을 넘게 쓰고도 개막전부터 클로저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장현식의 부재를 채우기 위해선 다른 불펜투수들의 이닝 소화가 많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균형이 무너지는 시작이 될 수도 있죠.
프로야구는 144게임을 소화해야 하는 긴 시즌을 치릅니다. 시즌이 진행되는 동안 변수는 항상 생기죠. 하지만 변수를 떠안고 시즌을 시작해야 한다면 어떨까요. 변수는 또 다른 변수를 만듭니다.
선수는 구단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재료입니다. 책임의식을 갖고 자기관리를 해야만 하죠. 경기장 밖에서의 부상에 대해선 더욱 그렇습니다. 트윈스의 시즌 출발은 어떨까요. 역전패가 쌓이면 52억 지출이 두고두고 생각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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