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이야기

[NBA] 되살아 난 뉴욕의 악몽 (by 할리버튼)

contentory-1 2025. 5. 23. 13:54

 

1994-1995 NBA 플레이오프 동부컨퍼런스 준결승전은 뉴욕 닉스인디애나 페이서스 대결로 치러졌습니다. 닉스의 홈코트 메디슨스퀘어가든에서 1차전이 열렸습니다. 이 게임에서 농구 역사에 영원히 남을 ‘마법’같은 순간이 만들어졌습니다. 지금까지 ‘밀러타임(Miller Time)’으로 회자되는 장면입니다.

레지 밀러의 3점슛(밀러타임)

기적은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1차전 게임 종료까지 18.7초가 남은 순간 닉스는 6점차의 넉넉한 리드를 안고 있었습니다. 팬들 모두 이른 승리의 축배를 들기 시작합니다. 닉스의 ‘광팬’으로 익히 알려진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Spike Lee)도 그들 중 한명이었습니다.

 

이제 막 축제가 펼쳐지려는 코트가 일순간에 침묵으로 뒤덮였습니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대 역전극이 펼쳐진 것 입니다. 이건 마치 9초짜리 스포츠 단편 영화와도 같았습니다. 주인공은 레지 밀러였습니다. 밀러는 게임 종료 직전 8.9초동안 무려 8점을 기록했습니다. 페이서스는 기적과도 같은 밀러의 퍼포먼스와 함께 1차전 승리를 따냈습니다. 방송에선 이 장면에 ‘밀러타임’이라는 타이틀을 붙였습니다.

레지 밀러의 초크세리머니

빛 바랜 아날로그 사진처럼 남겨진 영상이지만 NBA 역사를 되짚을 때 빼놓을 수 없는 한장면으로 남았습니다. 이 영화에 빛나는 조연도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스파이크 리 감독입니다. 밀러는 역전승이 확정되는 순간 리를 향하여 목을 조르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는 ‘초크(choke)’ 세리머니를 연출했습니다. 이 장면을 눈 앞에서 바라본 리 감독과 닉스 팬들은 이날 밤 지독한 악몽을 꿨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습니다. 뉴욕 닉스와 인디애나 페이서스는 동부컨퍼런스 결승전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시리즈 첫 게임이 열린 22일, ‘밀러타임 시즌2’가 메디스스퀘어 가든에서 개봉했습니다. 게임은 내내 접전이었습니다. 승부의 무게 추는 4쿼터 중반 이후 조금씩 닉스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게임 종료 2분 50여초가 남았을 때 닉스는 14점차로 앞선 상태였습니다. 시리즈 1차전 승리가 눈앞에 찾아왔습니다.

 

1997년 이후 지금까지 치러진 플레이오프에서 2분 50초 남은 가운데 14점차 리드를 지키지 못한 게임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970전 970승입니다. 기준을 1997년으로 잡은건 관련 데이터 집계를 이 때부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른 축배의 잔을 든 팬들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1995년 그날 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업그레이드 된 ‘밀러타임’이 시작됐습니다. 먼저 등장한 플레이어는 에런 니스미스. 그는 4쿼터 후반부에 3점슛 6개를 연속으로 성공시키면서 게임을 2점차 살얼음판 위에 올려놨습니다. 머리를 감사쮜는 팬들이 카메라에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게임 종료 부저가 울렸을 때, 코트는 축제의 현장에서 절규의 도가니로 변했습니다. 주인공이 등장했습니다. ‘The Overrated’ 타이리스 할리버튼이었습니다. 경기 종료까지 단 3~4초 밖에 남지 않은 순간 할리버튼은 페인트존 빈 공간을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굳이 굳이 3점슛 라인 밖으로 뛰쳐나간 그가 던진 슈팅이 림을 맞고 공중에 높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까지 뉴욕 팬들은 승리를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떠오른 공이 너무도 깨끗하게 그물속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득점을 올린 할리버튼이 승리를 확신하며 30년 전 레지 밀러의 ‘초크 세리머니’를 재현했습니다.

레지 밀러는 이날 경기를 생중계한 TNT방송의 해설 위원으로 코트 사이드에 앉았습니다. 밀러는 할리버튼의 세리머니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화답했습니다.

하지만 게임은 연장전으로 향합니다. 할리버튼의 발 끝이 3점 라인을 터치한 것으로 인정됐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서스는 최종 스코어 138-135로 1차전을 따냈습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할리버튼은 “그 슛이 2점인걸 알았다면 세리머니를 하지 않았을거에요. 아껴 둘 걸 그랬습니다. 한번 날린 셈이 되어버렸요”라면서 아쉬워했죠. 

인디애나 페이서스는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가장 많은 뉴스를 생산하는 팀입니다. 경기를 지고 있는 상황에서 높은 집중력을 보여주며 여러 차례 역전승을 일궜습니다. 1라운드 밀워키 벅스와의 시리즈는 물론 컨퍼런스 준결승전이었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의 시리즈에서도 기적 같은 역전승을 연출했습니다. 페이서스는 늘 그랬듯 이번 시리즈에서도 ‘언더독’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페이서스는 더 이상 과소평가 받을 팀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냈습니다. 페이서스가 코트 위에서 마법 같은 스토리를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결말이 몹시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