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헤수스 루자르도’가 선물한 다저스의 시즌 첫 패배

LA다저스가 졌습니다. 다저스가 패한 건 승리보다 더 놀라운 뉴스됐습니다.
다저스는 도쿄에서 시작한 개막시리즈를 포함해 오늘 게임 전까기 8전 전승을 올렸습니다. 상대는 시카고 컵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였습니다. 다저스는 컵스의 이마나가 쇼타, 타이거즈의 사이영 수상자 타릭 스쿠발, 브레이브스의 크리스 세일이 등판한 날도 이겼습니다.
다저스만큼은 아니지만 필리스 시즌 출발도 인상적입니다. 오늘 게임 전까지 필리스는 6승1패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60년간 이처럼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출발한 적은 없었습니다.
다저스와 필리스. 내셔널리그 서부와 동부지구를 상징하는 ‘아이콘 시리즈’에 담긴 여러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다저스는 5일(토) ‘시티즌스뱅크파크’(필리스 홈구장)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시리즈 오프닝 게임을 치렀습니다. 이 게임은 매주 금요일 2게임 단독 중계권을 확보한 애플TV가 독점 중계했습니다.

다저스 선발투수는 야마모토 요시노부, 필리스 스타터는 헤수스 루자르도였습니다. 루자르도가 낯선 야구팬도 있을겁니다. 루자르도는 마이애미 말린스에서 유망주로 각광받고 빅리그 데뷔 후 성공적인 선발투수 커리어를 쌓아왔습니다. 지난 오프시즌 필리스는 말린스와 2:2 트레이드를 통해 루자르도를 영입했습니다. 필리스는 지난 겨울 사사키 로키 영입에 실패하면서 루자르도로 시선을 돌렸죠. 필리스 프론트는 그 결정에 대해 “매우 만족”하고 있을 겁니다.
시티즌스뱅크파크는 메이저리그 30개 구장 중에서 가장 시끄러운 야구장으로 꼽힙니다. 관중의 열기가 그만큼 뜨겁죠. 극성스럽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입니다. 1회초 오타니 쇼헤이가 타석에 들어서자 열기 대신 야유가 쏟아집니다. 상대팀 슈퍼스타의 기를 꺾겠다는 필리건(광적인 필리스 관중들을 의미)의 첫 인사였습니다.

다저스와 필리스는 각각 내셔널리그와 서부와 동부를 대표하는 팀입니다. 성적은 물론 인기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두 팀이 라이벌 구도를 갖고 있진 않았습니다. 2009년 이후 플레이오프에서 경쟁한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슈퍼팀을 구성한 다저스가 무패 행진을 이어가는 중 필리스와 경기를 펼치게 됐습니다. 단숨에 묘한 라이벌리가 형성됐습니다. 두 팀 감독과 선수들이 게임을 앞두고 나눈 인터뷰는 라이벌 구도를 만드는 것을 재촉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나는 다저스와 필리스가 비슷하게 플레이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두 팀은 슈퍼스타 플레이어가 많다. 우린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고도 했습니다. 로버츠 감독의 인터뷰는 점잖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다저스가 한 수 위’라는 뉘앙스를 풍겼습니다. 말에 ‘품위’를 입혀 상대를 비꼬는듯한 인터뷰 말다툼에 필리스 슈퍼스타 브라이스 하퍼도 동참했습니다. 하퍼는 “LA는 너무나 훌륭하고 매력적인 도시다. 세상 모든 사람이 LA를 가고 싶어한다. 음식부터 화려한 파티 문화, 스포츠까지. 그곳엔 다저스도 있고 레이커스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퍼는 다저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대신 로스앤젤레스를 언급하면서 그 일부로 다저스를 표현했을 뿐이죠.

게임이 시작되자 타이트한 긴장감이 큰 야구장 전체를 꽉 채웠습니다. 26세의 필리스 선발투수 헤수르 루자르도는 마운드에서 ‘원맨 쇼’를 펼쳐보였습니다. 이날은 루자르도의 필리스 홈 게임 데뷔전이기도 했습니다. 루자르도는 7이닝을 던지면서 안타는 단 2개만 허용했습니다. 삼진은 무려 8개를 잡아냈습니다. 그는 96마일을 상회하는 패스트볼과 함께 우타자에게는 체인지업, 좌타자에게는 슬라이더를 주요 구종으로 선택했습니다. 루자르도는 오늘 게임 승리투수가 되면서 시즌 2승째(방어율은 1.50)를 올렸습니다.

필리스와 루자르도는 1회말 선취점을 뽑고 7회말 2점을 더 올리기까지 6이닝 이상을 무실점으로 잘 막아냈습니다. 선취점을 뽑는 과정은 다소 싱거웠습니다. 2번타자로 나선 트레아 터너가 2루타를 친 뒤, 3루 도루를 시도했습니다. 다저스 투수 야마모토가 터너를 아웃시키기 위해 3루수에게 공을 던졌지만 터무니 없는 악송구가 됐습니다. 그 틈에 터너는 편하게 홈플레이트를 밟았죠.
필리스는 7회말 다저스의 불펜투수 커비 예이츠를 상대하면서 추가점을 올렸습니다. 닉 카스테야노스의 2루타와 브라이슨 스탓의 밀어친 안타가 연달아 터졌죠. 여기에 브랜든 마쉬는 희생땅볼로 타점을 더했습니다.
9회초, 다저스는 역전 기회를 잡았습니다. 선두타자 무키 베츠가 볼넷으로 출루한 상황에서 이번 시즌 ‘슈퍼 유틸리티맨’으로 업그레이드 된 평가를 받는 토미 에드먼이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키움 히어로즈에서 다저스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김혜성은 한 때 에드먼과 주전 포지션 한 자리를 놓고 경쟁했습니다. 지금은 두 선수를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에드먼은 필리스의 클로저 조던 로마노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쳐냈습니다. 벌써 시즌 다섯번 째 홈런입니다. 점수는 2-3. 다저스가 ‘턱밑’까지 따라붙은 상황에서 로마노는 윌 스미스에게 볼넷을 허용했습니다. ‘극성스러운’ 필리건들의 야유가 쏟아졌습니다. 이제 홈런이 또 터지면 역전이 되는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타석에는 맥스 먼시. 3볼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히트 앤 런’ 작전을 걸었습니다. 타자는 무조건 휘두르고 1루주자는 반드시 뛰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로마노가 던진 공은 존에서 공 2~3개가 벗어날 만큼 높은 공이었습니다. 방망이를 휘둘러야만 했던 먼시가 헛스윙으로 아웃됐고 대주자로 나서 도루를 시도한 크리스 테일러도 2루에서 태그 아웃되면서 더블 플레이로 게임이 그대로 끝났습니다. 로마노도 관중들도, 필리스 선수들도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다저스는 이렇게 시즌 첫 패를 당했습니다. 다저스는 맥없이 무너지지 않았고, 많은 점수를 내주지도 않았습니다. 선발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는 6이닝 3안타 1실점 5삼진으로 호투했습니다. 다만 타자들이 필리스 투수들을 공략해내지 못한 것이 패인이 됐습니다.

시리즈 2차전 선발투수로 다저스는 사사키 로키, 필리스는 애런 놀라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사사키는 1차전 등판을 마치고 로버츠 감독에게는 물론 언론으로부터 맵고 쓴 맛의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리그 선발투수 가운데 커브 구종가치 최상위권에 올라 있는 놀라는 시즌 첫 등판에서 5실점하면서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두 선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죠. 사사키는 “스트라이크를 던질 줄 모르는 채 마운드에 올랐다”는 혹평을 들었습니다. 놀라는 첫 등판에서 볼넷을 단 하나도 내주지 않을만큼 제구와 커맨드가 잡혀있었습니다.
시리즈 2차전은 어떻게 전개될까요. 사사키는 반등에 성공하면서 선발투수 다툼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시즌 초반 이 두팀의 경쟁이 재미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들은 오는 가을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를 치를지도 모릅니다. 미리보는 챔피언십시리즈 2차전은 5일 새벽 5시에 시작합니다.